내 삶의 주도권을 잡고 싶다면 - [내 지위는 내가 결정합니다]
살다 보면 내 삶인데도 다른 사람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키지 않는 부탁인데 거절하지 못한다. 상대의 기분이 상할까 봐 하고 싶은 말을 삼킨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의 기대에 맞추느라 자신의 생각을 뒤로 미룬다. 갈등이 생기면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먼저 양보한다.
처음에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마음속에 불편함이 쌓인다. 내가 선택해서 배려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 행동했기 때문이다.
삶의 주도권을 잃는 것은 거창한 일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관계에서 자신의 선택을 하나씩 포기할 때 시작된다.
핀라이트 출판사에서 출간한 톰 슈미트의 [내 지위는 내가 결정합니다]는 이런 관계의 문제를 ‘지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내가 성격이라고 믿었던 것이 지위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쉽게 성격으로 설명한다.
“나는 원래 거절을 잘 못한다.”
“나는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강하게 말하지 못한다.”
반대로 “나는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한다”거나 “나는 항상 내가 결정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정말 변하지 않는 성격일까.
사람은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말을 조용히 듣는 사람이 집에서는 자녀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도 부모 앞에서는 말수가 줄어들 수 있다.
[내 지위는 내가 결정합니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행동 가운데 일부는 특정한 관계에서 오랫동안 반복해 온 지위 행동일 수 있다. 늘 양보해 왔기 때문에 양보하는 사람이 되고, 늘 상대에게 맞춰 왔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의 성격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요한 가능성이 하나 생긴다. 성격이라고 생각하면 바꾸기 어렵지만, 지위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행동을 선택해 볼 수 있다.
주도권은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지위’를 오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위가 높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며 낮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회의를 이끌어야 할 때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전문성을 존중해야 할 때는 한발 물러나 듣는 것이 더 적절하다. 누군가를 보호해야 할 때는 단호해야 하지만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문제는 어느 위치에 있느냐가 아니다. 그 위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항상 상대에게 맞추는 사람만 자신의 지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강해야 하고, 언제나 자신이 결정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하나의 지위에 갇혀 있을 수 있다.
삶의 주도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니다. 앞에 설 때와 물러설 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관계의 패턴을 바꾸는 작은 선택
늘 직장 동료의 부탁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작은 부탁이었다. 몇 번 기꺼이 도와주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상대는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자신의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가 되어도 거절하기 어렵다. 이때 우리는 상대가 먼저 달라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관계의 패턴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변화는 자신의 지위를 조금 다르게 선택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은 제 업무를 먼저 마쳐야 해서 어렵습니다.”
화를 내거나 상대를 공격할 필요는 없다. 관계를 끊을 필요도 없다. 이전과 다른 위치에서 자신의 상황과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면 된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다. 늘 부탁을 받아주던 사람이 거절하면 상대도 당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은 행동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상대의 반응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선택이 반복되면 관계의 패턴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양보하더라도 내가 선택해서 양보한다
삶의 주도권을 갖는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자기주장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면 따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편의를 양보할 수도 있다. 때로는 논쟁하지 않고 물러나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행동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행동을 누가 결정했느냐이다. 거절이 두려워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과 충분히 생각한 뒤 기꺼이 도와주는 것은 다르다. 상대가 무서워 침묵하는 것과 지금은 듣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말을 아끼는 것도 다르다. 마지못해 양보하는 것과 관계를 위해 스스로 한발 물러나는 것 역시 다르다.
겉으로는 똑같이 양보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는 끌려간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한 행동이다. 삶의 주도권은 바로 이 차이에서 생긴다.
내 지위를 내가 결정한다는 것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주어진 공식적인 위치 역시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내 지위는 내가 결정합니다]라는 제목이 던지는 메시지도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내 지위를 결정한다는 것은 언제나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관계를 마음대로 움직이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필요할 때는 단호해지고, 필요할 때는 부드러워지는 것.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들어야 할 때 듣는 것.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지켜야 할 경계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지위가 가장 좋은지를 찾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맞는 지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이다.
삶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도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일이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람과 상황에 끌려다니기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그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불편한 순간에 침묵할지 자신의 생각을 말할지, 앞에 설지 한발 물러설지를 스스로 결정해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바꾸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 내 삶의 주도권을 잡고 싶다면 먼저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지위를 취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내 지위를 내가 결정하는 작은 선택들이 쌓일 때, 비로소 내 삶의 방향도 내가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은 핀라이트 출판사에서 출간한 [내 지위는 내가 결정합니다]를 참고하였습니다. 지위기술과 인간관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핀라이트 출판사가 운영하는 지위기술과 인간관계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제와 무단 전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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